조희대 대법원이 자신들이 신속한 판결을 내는 이유로 뜬금없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을 인용해서 화재가 되고 있다.

이 말은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이 1868년 의회 연설에서 남긴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의 뿌리는 더욱 깊다. 1215년 제정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는 "우리는 누구에게도 권리나 정의를 판매하지 않을 것이며, 거부하거나 지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으며, 이후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는 1963년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는 부정의다(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며 이 원칙을 다시 강조하였다.

이 말은 정의의 시의성과 실행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문장이 전제하는 ‘지연’이라는 개념이 만약 ‘방향성 있는 속도 Velocity’이 아닌 단순한 ‘속력 Speed’만으로 환원될 경우,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정의를 부수는 부메랑이 될 것임을 역 경고한 것이다.

본 칼럼은 이러한 정의의 본질을 무시한 ‘속력 중심 정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속력 중심의 정의는 정밀성과 심층적 논의를 희생시킬 수 있다. 정의가 ‘빨리’ 실현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지나칠 경우, 사건의 맥락과 당사자의 진술, 구조적 원인 등을 면밀히 검토할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잘못된 판결이나 편향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오히려 정의를 훼손하게 된다. 마그나 카르타가 지적한 “거부하거나 지연하지 않을 것”은 ‘속도’ 자체보다는 ‘의도적 회피’를 경계한 말이다. 곧, 성급함은 정의의 본질과도 어긋난다.

둘째, 속력만을 고려한 정의는 권력 구조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 특히 미디어나 여론에 의해 ‘신속한 정의’를 요구받을 때, 사법부나 행정기관은 실제 사실보다는 여론에 따라 판단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는 마틴 루터 킹이 주장했던 ‘실질적 정의’의 철학과 충돌한다. 킹은 “부당함은 어디서든 위협이 된다”고 말했듯, 정의의 실행은 단지 ‘언제’냐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단지 ‘속력’의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은 오히려 ‘적시에, 정당한 방법으로, 충분한 숙고를 통해’ 정의가 실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은 속력은 때로 정의를 정의답지 않게 만든다. 방향성을 고려하지 못한 판결은 잘못된 판결을 수정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절대로 속도 있는 판결도 아니다.

얼마전 있었던 헌재의 판결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 문형배 재판장이 한 인터뷰에서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 화재다. 문재판장은 속력에 방점을 둔 다수결이 아니라 속도를 고려한 전원 합의를 만들기 위해 숙고하는 과정이 길어져서 판결이 늦어졌다고 이유를 밝혔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니 만큼 속력이 아니라 속도가 변수였다는 해명이다.

정의는 단순한 시간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성과 절차, 맥락과 공동체의 합의를 아우르는 복합적 가치이다. 따라서 정의가 진정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속력뿐 아니라 그 방향성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시간을 분초단위로 계산해서 윤석열을 풀어준 지귀연은 법기술을 이용해 정의의 본질을 왜곡해 선택적 정의의 기초를 세운 판사가 되었다. 대한민국 사법정의의 토대를 부순 판사다. 정의의 방향성을 상실한 속력주의가 가져온 파국이다. 여기에 대법원 판사들까지 정의의 방향성을 잃고 속력주의자로 합세했다. 이들은 판결문에서 나라의 미래에 대한 문해력이 떨어져 속력만을 변수로 삼았음을 자백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사법질서의 근간을 맡겨야 할 것인지는 앞으로도 국면마다 이슈가 될 전망이다. 법관들이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부정한다면 차라리 이들을 해고하고 많은 문서를 순식간에 읽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AI 재판관이 평결을 하고 국민이 최종 배심원으로 판결을 내리는 시스템을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