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업 경영자들에게 키워드로 자주 회자되는 말이 있다. 바로 "초격차"다. 경쟁자들을 완전히 따돌리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특히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영 전략에서 핵심 철학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초격차"라는 개념은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의 산성화된 분위기에서 겉으로 보기엔 선명하고 매력적이지만, 실은 지금의 시대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위험한 철학이기도 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 아프리카 속담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초격차는 무한경쟁과 독주를 전제로 한다. 이는 바로 신자유주의 철학의 다른 얼굴이다. 신자유주의는 각자도생의 경쟁 구조를 강화시키며, 사회와 기업, 환경 간의 유기적 관계를 해체해 왔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불평등 심화, 생태계 파괴다. 이런 시급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지구는 침몰하는 배다. 아무리 초격차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침몰한 지구에서 혼자 사업할 수는 없다.

초격차 전략은 경기가 호황이어서 기업들의 무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던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물이자 신화다. 지금처럼 성장의 버블이 꺼지고 모두가 침몰하는 배에 올라탄 형국에서는 자신만 살겠다고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이기적 전략이다. 지금과 같은 지속되는 L자 불경기 시대에는 운명공동체인 침몰하는 배의 원인을 찾아서 머리를 맞대고 수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금과 같은 L자 경기 신자유주의의 유물인 초격차를 전략적 우위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초격차는 단기적 효율과 지배력 확대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기업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다. 지금 시대는 기술력 하나만으로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으며, 오히려 기술을 연합해 플랫폼 기반의 협업과 공진화(co-evolution)가 가능한 지속가능성을 전략적 포커스로 삼아야 할 때다.

이미 이런 거버넌스의 전환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바로 파타고니아다. "우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존재 목적을 명확히 밝힌 파타고니아는, 협업과 생태계 기반 거버넌스를 중심에 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가치 창출에 있어 경쟁보다는 공통의 목적을 드라이버로 삼는다. 그리고 성과가 생기면 그것을 공정하게 나누는 구조를 지향하며, 이를 지속 가능성과 연결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단순한 도덕적 모범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경영 전략을 보여주는 길잡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초격차의 기술 독점이 아니라, 가치와 철학의 공진화, 그리고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공동 번영이다.

삼성전자의 현재 위기는 단순히 초격차 전략을 따르지 않는 리더십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시대의 전환점을 외면한 채, 여전히 초격차의 환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본은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방향성과 협업의 철학이다.

미국의 전경련인 BRT도 2019년 시장의 무한경쟁에 승리할 수 있는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신자유주의를 내려놓고 존재목적을 세우고 실현한 결과로 경제적 성과가 따라오게 하는 기업을 21세기의 기업다운 기업으로 정의했다. 기업생태계에 오픈플랫폼이 되어 남들의 성공을 크게 돕는 기업을 효과성이 있는 기업으로 성공의 정의도 바꾸었다. 이런 플랫폼을 구축한 기업이라면 구성원으로 이입된 청년들에게 회사에 충성하지말고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해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달라는 심리적 계약을 제시한다. 초격차로 자신만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반기업 정서의 주범으로 생태계를 산성화 시켰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는 초격차라는 신화를 내려놓고,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공진화하는 플랫폼, 신뢰에 기반한 파트너십, 그리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향한 공동의 목적이야말로 우리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미래다.

모두가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초뷰카시대에는 모두가 동의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남들의 성공을 크게 돕는 이타성이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역량이 같다면 가장 이타적인 기업이나 리더가 가장 현능한 사람이다. 지금 시대 가장 필요한 역량은 목적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않은 이타적인 현능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