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후, 세계는 예측 불가능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으로 점철된 뷰카(VUCA)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 육군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강대국들의 다자 경쟁 속에서 기존 질서가 해체되고 혼돈이 증폭되는 상황을 정확히 진단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뷰카의 심화 단계를 넘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은 초뷰카(Hyper-VUCA)의 심연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문제들이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날개를 달고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면서, 무질서는 특이점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치닫고 있다.

이러한 초뷰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인류는 다섯 가지 근본적인 공포가 중첩해서 몰고온 거대한 불안감, 즉 ‘대공포(The Great Fear)’에 휩싸여 있다. 인간 존재를 영원히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에 직면해 있다. 초뷰카 시대의 특징은 한 마디로 대공포다.

첫째 공포는 L자형 장기 불황의 심화로 인한 점점 대공황의 수렁으로 빠지는 공포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뉴노멀이 되어버린 저성장 기조와 이로 인한 대공황의 그림자는 짙어지고 있으며, 지속가능성은 점점 아주 먼 옛날의 신화처럼 들린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던 나라들의 거품이 꺼지고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률은 오랫동안 제로에 가깝다. 신자유주의를 이끌던 시장에서 주주를 위해 단기적 이윤을 좇던 대리인 거버넌스는 이미 그 동력을 잃었지만, 이를 대체할 거버넌스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미국에서는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들의 심리를 가스라이팅한 트럼프의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 세계가 점점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둘째 공포는 정해진 답이 없는 세상에서 모두가 영원히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길 잃음에 대한 공포다. 과거 초격차를 내세우며 답을 빠르게 추격하고 베끼고 도망가는 전략으로 성공했던 이들은 모두 길을 잃었다. 어려운 국면마다 문제를 해결해주던 리더의 포지션을 차지하는 사람이나 기업이 지금은 무질서의 원흉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의 답을 강요하며 혼란을 키우는 ‘리더십 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금 시대 리더는 답이 없는 눈 먼 골리앗이다. 젊은이들에게는 리더라는 말만 떠올려도 부정적인 감정이 앞선다. 리더 스스로 길을 잃었고,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사람들 또한 누우떼가 되어 덩달아 혼란에 빠졌다.

셋째,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고도화된 자동화와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대체가능성에 대한 공포다. 인간의 지능과 유사한 AGI의 발전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노동력과 직업의 대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인간은 AGI을 장착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비교해 일을 처리하는 Agency 능력에서 모두 패배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따라 가성비가 월등한 AI나 휴머노이드에게 인간의 일자리를 양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대체가능성의 문제는 고비용이 요구되는 의사, 변호사, 판사, 기자 등등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일반 직종도 예외는 아니다.

넷째, 초연결 사회는 모든 것이 연결되고 연결된 것에는 센서와 CCTV가 달려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촬영분을 모아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시대다. 극단적인 투명성으로 인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다. 가면을 쓰고 사는 삶에 익숙해진 우리는 언제 자신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정되어 가면이 벗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지구 곳곳의 망원경을 연결해 블랙홀까지 찾아내는 시대, 원하면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는 극단적 투명성(Brutal Transparency) 앞에서 가면을 쓰고 대충 연기하며 살아가던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치명적 투명성에 의한 가면 벗겨짐의 공포가 지금은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덮쳤지만 일반인도 언젠가 자신의 가면이 벗겨져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다섯째, 이러한 복합적인 공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기 속에서 엉뚱한 행동으로 갑작스러운 죽음(Sudden Death)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신자유주의 시대 죽음은 냄비 속 개구리처럼 점진적인 죽음(Slow Death)로 상징되었던 반면, 초뷰카 시대의 죽음은 블랙스완처럼 예고 없이 무작위로 덮친다. 위기가 상수가 된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급사(Sudden Death)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실제로 코로나 19는 무작위로 많은 사람들을 예고 없이 죽음으로 이끌었다. 윤석열이 일으킨 의료내란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들이 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블랙스완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여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죽음 앞에 선다.

이러한 대공포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 정해져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난제(Wicked Problem)에 대한 지혜로운 접근이다. 그리고 이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진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 운동이다.

진성 리더십은 카리스마나 변혁적 리더십과 같은 단순한 리더십 스타일의 대안이 아니라, 리더십의 필요조건을 넘어 충분조건을 인식하고, 유사 리더로부터 진정한 리더를 구별하는 안목을 길러내는 운동이다. 이러한 안목을 바탕으로 진정한 리더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의 초기값과 프랙탈을 만들어가는 변화를 추구한다.

진성 리더십은 초뷰카 시대의 대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지속가능성을 위한 스튜어드십 거버넌스(Stewardship Governance)의 개혁이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이끌었던 대리인 거버넌스를 극복하고, 지구와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성을 공동의 목표로 삼는 스튜어드십 거버넌스는 기업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진성리더십에서 설파하는 스튜어드십 거버넌스는 대주주의 이윤만을 좇는 마름(Agency)이 아닌, 지구와 미래 세대를 주인으로 섬기는 집사(Steward)의 역할을 강조한다. 시간의 검증을 통과한 백년 기업들은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에도 조용히 스튜어드십 거버넌스를 경영 원칙으로 삼아 번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누려왔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경영한다"는 사명을 내건 파타고니아는 이러한 스튜어드십 거버넌스로 혁신한 선두 기업이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재계를 이끄는 대표적 진성 리더다.

둘째, 진성리더십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고유의 존재 우위(Existential Edge)를 씨줄로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AI와 로봇은 효율성이라는 경쟁 우위(Competitive Superiority)를 갖는다. 인간은 선택, 판단, 결정과 같은 존재 우위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씨줄로 AI와 로봇이 제공한 경쟁우위의 날줄에 결합해서 자신 주변의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다시 공진화 시킨다. 진성리더십은 단기적인 경쟁 논리에 매몰되어 잃어버렸던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존재 이유를 삶의 과정 속에서 숙성시켜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통해 깨닫는 인문의 문제다. 시대적 맥락을 외면한 채 현학적 지식 논쟁에 빠진 인문학은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셋째, 진성리더십은 취약성을 인정하는 용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리더십이다. 모든 기업이나 리더는 이미 길을 잃었다는 취약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리더 스스로가 길을 잃었음을 용기 있게 고백할 때, 구성원들과 협력하여 나침반을 찾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다. 사티아 나델라 CEO 취임 후, MS는 돈에 눈이 멀어 길을 잃었음을 인정하고 ‘Hit Refresh’ 정책을 통해 고장난 나침반을 되살려 결국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아픔을 직면하고 책임질 용기가 없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꼬리 자르고 도망가는 유사 리더가 아닌,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본질에 접근하는 진성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초뷰카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무질서, 폭력, 편견이 난무하는 각자도생의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본질은 텅비어 있지만 겉만 화려했던 유사 리더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긴 대가는 너무나 크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진성 리더십 운동의 깃발을 세워야 한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이 넘쳐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진정으로 미래를 위한 근원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만이 우리를 대공포의 암흑으로부터 벗어나 희망의 빛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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