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 내면의 간절함과 존재적 질문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제도화(의례화)의 길을 걸었다. 제도화는 신앙을 체계화하고 공동체를 조직화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도화는 종교가 탄생했을 때 가졌던 생명성과 본질을 서서히 고사시켜 왔다.

사회과학의 창시자 Max Weber도 "제도가 신앙의 철장임"을 강조해왔고, 신이 주신 강한 신앙 능력을 가진 카리스마도 제도의 감옥에 갇히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모습을 그렸다. 종교 사회학자 Peter Berger는 『현실의 사회적 구성(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에서 종교를 기원으로 사회적 제도와 관습을 통해 구성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제도화가 종교의 의미를 고착화시키고 개인의 신앙 경험을 물상화 한다고 주장한다. 버거도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제도화와 세속화가 종교의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영향력을 감소키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라고 본다. 『천사의 소문(A Rumor of Angels)』에서는 현대 사회에서도 종교적 경험과 초월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더 강해지고 있음에도 제도화된 종교가 이러한 신자들의 갈망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해 스스로를 소멸시킨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종교가 죽는 과정은 곧 종교가 제도에 갇히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신은 신이기를 멈추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기능적 존재로 전락한다. 완전히 제도화 된 유럽 교회의 현 모습이다. 유럽 교회는 제도화의 철장에 갇혀 신앙이 사망 선고 당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한 층 더 깊이 들어가 분석해보면 제도화된 종교의 거버넌스인 순환론적 보상구조 때문이다.

제도화된 종교는 믿음의 핵심을 ‘보상’이라는 언어로 재구성해왔다. 신을 믿는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해서이고, 신앙을 실천하는 동기는 결국 삶의 개선이라는 보상에 있다. 이 구조는 종교를 일종의 기복 장치로 변형시킨다. ‘믿으면 잘된다’는 기제가 종교를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되고, 신은 그 안에서 보상을 집행하는 관리자로 전락한다. 이로써 종교는 순환 논리 안에 갇히게 된다. 신을 믿는 이유도 보상이고, 믿음으로 얻는 것도 보상이기 때문에, 보상이 사라지면 신도 사라진다.

이 보상 순환론이야말로 제도화된 종교의 죽음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더 이상 신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유용한 존재로만 작동한다. 유용하지 않으면 버려진다. 믿음은 계약이 되고, 신은 거래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는 종교가 스스로를 살릴 수 없다. 제도화의 뿌리는 유지되지만, 그 안에 담긴 영성은 서서히 말라간다.

종교의 회복은 신을 다시 드라이버(driver)로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 신은 인간이 조정 가능한 보상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숭배와 경외의 대상이어야 한다. 숭배는 보상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우러나는 감정이다. 이 숭배의 감정은 의무감이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과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의미감으로부터 자라난다. 이 기쁨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반복될수록 강화되는 강화제(reinforcer)로 기능하며, 믿음을 지속시키는 내적 동력이 된다.

이러한 재정립은 종교 거버넌스 전반을 바꾼다. 기존의 상명하달 구조에서 벗어나, 신을 중심에 둔 영적 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 영적 세계는 제도화 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맥락에 맞게 재해석되어 세워져야 한다. 또한 성직자, 평신도, 제도, 의례 모두가 신의 영적 드라이브에 맞춰 재배치되어야 하며, 그 과정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상호 작용과 공동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종교는 다시금 인간 내면의 깊은 갈망과 응답의 장이 되어야 하며, 신을 드라이브하는 삶에서 나오는 강화적 기쁨이 믿음을 지탱하는 주된 메커니즘이 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은 공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 한 단계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삶이 신을 드라이브로 받아들여 구조적으로 나아지고, 사회적 질서와 제도적 안정이 다시 구축되면, 종교는 다시 새로운 제도화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연이라면, 제도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다시 신을 드라이버로 분리해내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때 종교는 다시 한 번 신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고, 제도는 그 껍데기일 뿐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 주는 보상이 다시 드라이버로 전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보상은 어디까지나 신을 따르는 삶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며, 신이 아닌 보상 자체를 추구하는 순간, 종교는 또다시 무덤으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희열, 성숙, 관계의 충만함, 존재의 깊이와 같은 영적 보상은, 드라이버가 아니라 공진화(co-evolution)의 결과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 공진화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이 성직자들의 책무다. 공진화를 통해 드라이브와 강화제가 제도 속에서 순환론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는 책무다. 공진화는 종교가 제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신앙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신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고 전복시키는 유기적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신 그 자체가 있어야 한다. 제도는 신을 담는 그릇일 뿐, 신은 결코 그 그릇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기독교도 경기가 붐을 일으키던 시대의 순환론적 거버넌스 이론인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성장했다. 순환론적 보상구조를 강조한 기복론을 앞세운 기독교가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화가 완성되고 경기가 침체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구조 속에서 순환론은 뱀이 배가 고프면 자신의 꼬리를 먹어가며 생존을 유지하다가 죽어가는 현상인 우로보러스를 초래했다. 신자 수는 같은데 신도들이 수평 이동해 더 큰 교회로 옮기는 현상은 대표적 우로보러스이고 우로보러스의 종착역은 모두의 죽음이다. 이런 수평 이동은 신앙의 증가와 상관없이 신앙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대마불사에 대한 믿음에 따라 큰 교회로 대피하는 현상이다.

대형교회가 제도화의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자신의 거버넌스를 혁신해 기독교 생태계를 원점에서 다시 복원하는데 앞장서지 못한다면 종교에 덮치는 쓰나미는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