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도구를 통해 진보해왔다. 바퀴, 문자, 인쇄기, 컴퓨터.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마주하고 있다. 문제는, 이 도구가 단순한 보조를 넘어서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화기가 사람의 전화번호 기억 능력을 앗아가고, 계산기가 산수 능력을 빼앗고, 내비게이션이 공간지각 능력을 마비시켰듯, AI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 자체를 마비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리함의 대가가 아니다. 사고를 하지 않는 인간은 더 이상 사피엔스(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AI는 인간을 에이전트로 대체한다.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추천 알고리즘이 대신 영화를 고르고, 생성형 AI가 대신 글을 쓰며, 자동화된 상담이 감정을 처리한다. 우리는 점점 "대신 살아주는" 기계를 옆에 두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체의 상실이다. 체험을 통해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인식하고, 세상을 자기 시점으로 바라보며 형성되던 자아는, 이제 타자의 시선과 기계의 명령에 의해 조정된다. 생각은 줄어들고, 판단은 위임되며, 삶은 위탁된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과연 우리는 아직 호모 사피엔스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도구는 인간을 돕기 위한 것이어야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빼앗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부를 수 없고, 더 이상 스스로의 삶을 ‘사는’ 존재라 말할 수 없다.

생각은 인간 존재의 마지막 선이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단지 기능적인 생명체에 불과할 것이다.